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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F3 테스트 참가기


F3 테스트 참가기

유경욱<레이서>

 2005년 1월15일, F3 테스트를 위해 이레인팀의 전홍식 부장과 함께 부푼 꿈을 안고 네덜란드를 향했다. 테스트를 받기 위해 외국으로 처음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유는 태어나 첫번째 F3이기 때문일 것이다. 



 12시간의 비행 후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3시간을 기다렸다 다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는 인천공항을 떠난 지 17시간이 지났다. 비행기 일정 때문에 하루 정도 일찍 이 곳에 온 우리는 여독을 풀기 위해 암스테르담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은 한눈에 보더라도 깊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도시였다.



 보트를 타고 1시간 정도 시내관광을 하다 보니 예전에 자신의 몸으로 새는 둑을 밤새 막아 마을을 지켰다던 소년의 이야기가 머릿 속에 떠오른다.



 반나절의 시내관광을 마친 우린 오후에 바로 짐을 꾸려 잔보트로 이동했다. 호텔은 경기장 정문에서 100m도 안되는 거리에 있어 트랙의 전반을 살펴 볼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경기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매년 말보로 마스터즈 경기가 열리는 곳이어서 그와 관련된 흔적들이 경기장 곳곳에 남아 있었다.



 우리는 경기장에 문의해 서킷을 차로 2바퀴 정도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를 차에 태우고 트랙을 돌아준 사람은 1970년대에 자신도 F3를 탔고, 시리즈 2위를 했다고 한다. 당시 1위가 알랭 프로스트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 시즌을 마치지는 못했으나 F1에도 몇 경기 참가했던 드라이버였다.



 일반 차의 뒷자리에서 2랩을 돌아본 나는 왜 사람들이 이 경기장을 'The Circuit for the Real Man'이라고 부르는 지를 알았다. 안 보이는 언덕을 눈 딱 감고 풀 스로틀로 넘자마자 살짝 액셀 페달을 놓은 뒤 바로 F3로 200km 풀 스로틀 코너가 나온다.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코너다.



 다음날 아침 테스트를 하기로 한 반아마스포트팀의 연락을 받아 그 팀에서 온 엔지니어 빌마와 함께 팀으로 향했다. 팀에 도착한 후 처음 내 눈에 들어 온 건 F3 보디와 트로피들이었다. 이 것들이 다시 나를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인상좋은 아저씨처럼 생긴 이 팀의 사장과 테스트에 대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주의할 점 등을 들었다. 꼭 가족같은 분위기의 팀이다.



 18일, 차를 몰기 전 올해부터 독일 F3의 공식 타이어로 선정된 한국타이어 테스트를 위해 다른 드라이버들이 차를 탔다.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F3라는 차를 처음으로 타보기 전에 그 차의 움직임, 라인, 컨트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였다.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눈으로 귀로 모든 것을 보고 들은 후 가슴 속에 담았다. 정말로 빠르고 좋은 소리를 가진 차였다. 타이어 테스트 후 시트를 만들었다. 내일 차를 탈 생각을 하니 또 한번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19일 오전, 어제 마저 끝내지 못했던 타이어 테스트를 계속했다. 2팀이 참가한 타이어 테스트 결과에 모두들 만족해했다. 테스트 후 오후에 드디어 F3의 시트에 올랐다. 항상 바라던 그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 타는 F3, 경기장도 처음, 이것들만으로도 충분히 긴장하고 있는 나를 비가 더 조그맣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시 F3 첫 테스트날 드라이와 웨트 상태를 경험하는 행운아가 몇이나 될까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긴장을 풀었다.



 드라이 타이어를 장착하고 2랩 이후 바로 레인 타이어로 교체해 코스인했다. 차에 대한 적응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몇 랩이 지난 후엔 정말 재미있었다. 엔진은 파워가 넘쳐흐르고 차에서 느껴지는 다운포스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머리 속에는 '차에 대한 적응'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첫 테스트가 끝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팀 스텝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처음 타는데 작년 독일 F3 챔피언인 바스트엔 콜로시와 불과 1초라는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나를 더 기분좋게 만든 건 "역시 한국 대표 드라이버"라는 얘길 듣고 난 후였다. 나 역시 정말로 놀라웠다. 처음 F3를 타는 나를 긴장된 눈으로 지켜 보는 바스트엔의 얼굴은 전혀 작년 챔피언처럼 보이지 않았다.



 예상 외로 첫 테스트는 이렇게 순조롭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놀라운 점 하나가 있었다. 불과 2시간밖에 타지 않았는데 내 팔과 목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운동이라면 나도 정말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F3를 타는 드라이버들은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일,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우리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트랙은 아직도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9시에 그린 램프가 켜진 후 코스인을 했다. 느낌이 어제와는 또 달랐다. 어제보다 스피드도 더 나고 다운포스도 더 있는데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랩, 한 랩을 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달렸다.



 달리는 도중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겨 피트인을 해야만 했다. 브레이크 패드 교체 후 에어가 생겨 스펀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피트인하자마자 차에서 내린 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조금 실망이었다. 완전히 내 마음대로 차를 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무렵 내 드라이빙을 쭉 지켜 보던,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팀의 엔지니어 전홍식 부장이 나에게 한 마디 했다. 그건 차의 움직임과 무게배분이었다. 그렇다. 내가 2년동안 타던 포뮬러BMW와 F3의 차이, 즉 높은 다운포스, 고성능 브레이크, 엔진의 출력 차이에서 오는 차의 무게배분 컨트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드라이빙을 했었다. 



 포뮬러BMW는 포뮬러로 레이스를 시작하는 드라이버들에게 거의 완벽한 교육을 해줄 수 있는 차다. 하지만 나는 지금 포뮬러BMW가 아니라 F3를 몰고 있다. 그렇다면 F3에 맞는 드라이빙을 해야 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내가 긴장했는 지, 그 사실을 잠시 잊었다. 나는 지난 2년동안 포뮬러BMW를 통해 교육받았던 걸 가지고 전투에 임하는 마음으로 드라이빙을 했다.



 차를 완전히 셋업한 후 다시 들어가려는데 또 비가 내렸다. 결국 노면이 완전히 마른 상태에서는 탈 기회가 없으려나보다 싶어 좀 아쉬웠으나 레인 타이어를 장착하고 트랙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조금 전 생각했던 포뮬러BMW와 F3의 차이를 생각하며 마치 사나운 야생마를 달래듯 코너에서의 정확한 브레이킹, 높은 다운포스를 이용한 차의 밸런스, 탈출 때의 정확한 가속 포인트를 생각하며 그대로 시도해봤다.



 역시 문제점은 거기에 있었고, 난 더욱 안정적이고 빠르게 코너를 탈출할 수 있었다. 노면상태 때문에 코스기록에는 도전할 수 없었으나 관계자들은 만족할 만한 기록을 얻었다며 칭찬을 잊지 않았다. 물론 나에게는 그 어떤 레이스보다 이번 F3테스트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테스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올해 정말로 독일 F3에 나가 한국인이, 한국 모터스포츠가 이렇게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끝으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신 BMW코리아와 푸마코리아 모툴, 테스트를 받게 해주신 어머니와 이레인 레이싱팀의 이승헌 사장님 이하 팀원들에게 글로나마 감사를 전한다.










-한경자동차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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