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자인의 개척자 베르토네 세계의 카디자이너 ①누치오 베르토네(Nuccio Bertone; 1914~1997) 1912년 지오바니 베르토네는 이탈리아 토리노에 카로체리아 베르토네를 설립했다. 지금은 유명 디자인회사지만 초기엔 자동차 보디 제조 및 부품 수리업체로 출발했다. 그리고 2년 후 태어난 누치오 베르토네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세계에서 손꼽히는 디자인회사로 만들었다.
누치오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 그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달나라 우주선만큼이나 신비로운 대상이었다. 더구나 아버지 사업의 영향으로 누치오는 자연스럽게 자동차와 함께 자라났다. 그러나 그의 대학 전공은 자동차와 관련된 학과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토론토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회계사 자격증까지 땄다.
더구나 19세 때는 세계 경제대공황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경제위기가 되풀이됐다. 경기불황이 계속되자 그는 피아트 508 바릴라를 기본으로 개량한 베르토네의 차를 팔기 위해 나폴리, 로마, 발리 등 이탈리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물론 누가 시킨 건 아니었다. 그가 자청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카디자인의 세계에 뛰어든 건 아버지에게 회사를 물려받은 1952년부터. 초기에는 재정난에 허덕이기도 했으나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피아트 아르디타의 특별 보디를 전시하며 조금씩 이름을 얻어갔다. 2년 후 그가 디자인한 알파로메오의 줄리에타 스프린트가 4만대 판매를 기록하며 회사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누치오가 ‘베르토네’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건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프랑코 스칼리오네, 조르제토 주지아로, 마르첼로 간디니를 영입해 시너지효과를 거두면서부터이다. 1967년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총 14만대가 생산된 피아트 850의 디자인이 성공했다. 다시 1년 뒤에는 중앙에 엔진을 얹은 알파로메오 V8, 1971년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76년에는 그의 이름을 북미대륙에 떨치게 만든 피아트 X1/9를 설계했다.
카운타크의 경우 디자인이 시작되기 전 무렵의 람보르기니는 경쟁사인 페라리의 4.4ℓ 엔진을 뛰어넘는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길 원했다. 베르토네가 만들어 낸 건 V12 420마력 엔진을 기본으로 디자인돼 1970년 12월 직원들을 대상으로 첫 공개됐다. 이 때 참석자들 중 한 명이 “쿤타치(Countach)”라고 소리를 질렀다. 감염이나 전염을 뜻하는 말로 이 차의 전위적인 스타일에 놀라 나온 말이 바로 모델명이 됐다. 이 차는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 공식적인 데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줬다.
이 밖에도 그는 람보르기니 에스파다, 이노센티 Y10과 수많은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등 1997년 2월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세계적인 명차를 디자인한 위대한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하다.
누치오의 대표적인 모델은 1953년 토리노 모터쇼에 나온 바트. 앞머리에 코가 나와 있고 뒷부분은 3개의 테일 핀으로 된 독특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어 나온 바트7은 테일 핀이 더욱 안쪽으로 휘어들어 아름다운 조형미와 공기의 매끈한 흐름도 도왔다. 바트9은 알파로메오의 부탁으로 만든 모델로 실용성을 살린 제품이다. 바트시리즈는 1960년대초 일본 수집가에게 넘어갔다.
그가 생전에 아꼈던 차는 1989년 데뷔한 시트로엥 XM이다. 기다란 노즈와 짧은 데크의 전형적인 웨지 스타일을 지녀 1990년엔 유럽 최우수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누치오는 대우 에스페로, 시트로엥 XM, 잔티아와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데뷔 당시 국내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진희정 기자 jinhj@autotimes.co.kr
-한경자동차pl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