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름에 복고풍 바람 거세
현대 TG는 그랜저, 기아 JB는 프라이드, GM대우 M200은 마티즈
국내 차 이름에 복고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과거 인기를 얻었던 모델의 이름이 새 차에 그대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아 자동차 이름도 레트로(retro) 트렌드 범주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오는 4월 출시할 뉴그랜저XG 후속모델 'TG(프로젝트명)'의 차명으로 '그랜저'를 사용할 방침이다. 현대는 국내 대형 세단시장을 개척했던 그랜저의 명성을 TG로 부활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랜저는 지난 86년 현대가 미쓰비시 기술을 도입해 만든 최초 대형 세단으로, 당시 금액으로는 사상 최대인 150억원의 개발비가 투자된 차종이다. 그랜저(Grandeur)라는 이름은 '웅장, 장엄, 위대함' 등을 뜻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중형차와 대형차의 중간급이지만 국내에서 중·대형차의 구분이 모호하던 시절 그랜저는 최상급 대형 세단으로 각광받았다. 이후 그랜저는 '뉴그랜저'와 '그랜저XG', '뉴그랜저XG'를 거쳤다.
기아자동차 또한 오는 2월 출시할 소형차 리오 후속모델의 차명으로 '프라이드'를 사용한다. 프라이드는 1980년 산업합리화조치 이후 승용차를 생산할 수 없었던 기아가 87년 합리화조치 해제를 계기로 만들어낸 첫 승용차다. 1986년 12월 생산을 시작해 99년 12월까지 나온 장수모델이다. 포드와 마쓰다, 기아의 합작품으로 해외시장에선 포드 '페스티바'로 판매됐다. 특히 프라이드는 지난 94년 뒤를 잇는 '아벨라'가 출시된 후에도 인기가 높아 계속 생산되다 99년 아벨라 후속차종 '리오'의 등장을 계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GM대우자동차도 이 같은 차명 복고풍 바람에 합류한다. GM대우는 오는 3월 출시할 마티즈 후속모델 M200(프로젝트명)의 이름으로 '마티즈(Matiz)'를 계속 사용키로 했다. 회사측은 M200의 차명을 새로 만드는 것도 검토했으나 기존 마티즈의 인기가 워낙 높았던 점을 감안, 기존 차명을 그대로 따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GM대우의 주력모델로 평가받는 마티즈는 1998년 3월 출시됐다. 당시 마티즈는 깜찍한 디자인으로 단숨에 경차시장을 점령했고, 해외시장에서도 경차부문에서 잇따라 '최고의 차'에 오르는 등 위력을 발휘했다. 출시 해인 98년 영국자동차공업협회는 마티즈에 디자인상을 수여했고, 이탈리아 자동차 전문기관인 오토모빌리아도 마티즈를 경차부문 '최우수차'로 선정했다. 이후 마티즈는 뉴마티즈로 내수경쟁에서 현대 아토스를 물리쳤고, 마티즈II를 앞세워 기아 비스토를 단종으로 내몰았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GM대우는 마티즈의 이 같은 명성을 신차종에 그대로 투여, 마티즈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이 처럼 업계가 잇따라 예전 차종의 이름을 사용하는 데 대해 국내 한 디자인 전문가는 "새로 차명을 붙이면 이를 알리기 위해 별도의 비용이 들고, 시간도 걸린다"며 "이미 사람들의 머리 속에 깊게 각인된 차명을 쓰면 그 만큼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측면은 마케팅적 접근이다. 국내 완성차업계에서 상품기획업무를 담당하는 K 부장은 "외국의 경우 인기차종의 이름을 몇 세대 이어가며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새 차가 나올 때마다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는 차명을 하나의 브랜드로 꾸준히 사용해 전통을 내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한경자동차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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